聯에게 받은 세계.음악을 들을때 인간은 자신이 세계이고, 세계가 자신임을 깨달음으로써, 세계를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세계를 발견
聯에게 받은 세계.음악을 들을때 인간은 자신이 세계이고, 세계가 자신임을 깨달음으로써, 세계를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세계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과 세계를 주체와 객체의 모순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관계’로, 요컨대 음향의 진동으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음악 감상에서 비로소 우리는 과학이 ‘영역’과 ‘상대성’ 을 이야기할 때 의도하는 것을 몸으로, 구체적으로, 신경으로, 말 그대로 경험한다. 우리는 음향의 장 (이것은 중력장의 특수한 경우이다) 에서 인간과 세계가 순수한 관계 속에서, 그러니까 서로 상대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후설의 용어로는 “순수한 의도성 \pure Intentionalitàt\” 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음악을 듣는 것은 ‘절대적 경험’, 말하자면 보편적 수학의 장에서 주체와 객체의 상대성의 경험이다.음악은 스스로 감출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자체의 탁월한, 극도로 복합적인 단순함 속에서, 수학적인 간결함 속에서 모호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이 이와 같다. 음악은 죽음 속에 있는 삶이고, 삶 속에 있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쇼펜하우어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 빌렘 플루서, <몸짓들>. -- source link